허락은 필요없다[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안전한 임신중절을 할 권리" 이었습니다]

위티
2020-12-01
조회수 1792

[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안전한 임신중절을 할 권리" 이었습니다]

나는 18살에 집을 나온 청소년이었다. 집을 나와서 고시원에서 지내거나 애인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고, 친구들과 공동주거를 하기도 했다. 청소년이어서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알바를 하려고 해도 20살 이상만 모집한다는 경우도 많았고, 법적으로 청소년이 노동하려면 부모동의서가 필요했다.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없이 혼자서 살려고 하는 청소년과 집 계약을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친구의 신분증을 빌려 나를 숨겼다. 그래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집을 나와서 살던 중임 신을 하게 되었다. 시민단체 활동과 알바를 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임신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나는 고민에 빠졌고 애인은 내 옆에서 내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봤던 성교육 영상을 떠올렸다. 교사는 여학생들만 음악실에 모아두고 다 큰 태아를 낙태하는 영상을 틀어주었다.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했다. 우리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것과 낙태를 하는 것은 태아를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학습했다.

 나는 임신중절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임신중절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산부인과에서는 임신인 것까지는 확인해주었지만, 임신중절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내가 청소년이라는 사실 때문에 “부모님을 데려오라”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외국에 계신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내가 살던 지역의 산부인과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대부분 임신중절 수술을 하지 않거나 청소년은 부모를 데려와야만 한다고 말했다. 절망한나는 결국 서울에 가서 수술을 받을 병원을 찾아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나는 임신 사실을 말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이 컸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술을 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2살이 많던 친구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신분증을 빌려달라고 했다. 친구는 말없이 신분증을 건네주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친구의 신분증을 들고 찾아간 병원에는 “타인의 의료보험을 도용한 자는 xx 년 이하의 징역이나 xxx 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문구가 카운터에 적혀있었다. 의료보험을 사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손끝이 떨렸다. 그래도 수술은 받아야 하니 모아둔 현금 80만 원을 건넸다.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수술을 받고 허리가 아픈 증상이 계속되었다. 나는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항생제가 든 독한 약을 먹었다. 나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던 애인은 수술비를 내지 않았고 아파서 걸었던 나의 전화에 “공부해야 한다”며 전화를 달깍 끊었다.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당시 혼자 살던 고시촌의 작은 방이 더 작게 느껴졌다. 방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느 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말을 하고 글을 썼다.

나는 일기장에 적었다.


“나는 살인자인가? 나는 사람인가? 나는 자궁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거짓말쟁이인가? 나는 진실한가? 나는 숫자인가?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나는 누군가의 부속품인가?”


 2020년 10월 7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법무부는 형법 개정법률안을,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 개정법률안을 각각 입법 예고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의 임신에 한해 여성 요청으로 임신 중지를 허용하고, 이후 24주까지는 몇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임신 중지를 허용한다. 미성년자의 경우 추가 동의 요건을 규정했는데, 16세 이상 미성년자의 경우 상담 사실확인서를 필수 요건으로 상담을 강제했다. 또 16세 미만의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의 부재나 학대상황인 경우에만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임신 중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학대상황을 공적 자료로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18살에 임신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낙태했다.

임신중절을 경험한 청소년도, 사람이다. 존재한다. 진실하다. 삶의 주인이다.


라일락


#낙태죄 폐지 #허락은필요없다 #청소년_임신중지권_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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