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후기허락은 필요없다[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미안하지 않은 일상" 이었습니다]

위티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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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미안하지 않은 일상" 이었습니다]

청소년인 나의 삶에는 미안해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엄마의 사인을 따라 그릴 때, 친구의 대리인이 되어줄 수 없을 때,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요구받던 수많은 순간에 우리는 무력하고, 미안했습니다. 

 친구가 집을 나온 겨울, 우리는 새벽까지 잘 곳을 찾아 숙박업소가 모여있는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찜질방도, 피시방도, 24시 만화방도 10시 이후에 찾아온 청소년을 받아주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거절 후에 운 좋게 들어간 모텔은 인터넷 가격의 두 배 이상을 불렀습니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값이었습니다. 낡은 모텔에 들어가 차가운 발을 만지다가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조그맣고 더러운 방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청소년인 것을 미안해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속이고 숙박한 청소년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숙박업소에서 잠을 잔 청소년은 그저 이기적이고, 발랑 까진 애인 것 같았습니다. 불법이라는 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숙박업소와 ‘섹스’가 연결될 경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합법’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안전한 공간은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쉼터는 자리가 없었고, 경찰은 부모님에게 연락했습니다. 거리는 추웠고, 더 저렴한 가격의 깨끗한 숙박업소는 청소년을 받지 않았습니다. 

 청소년은 정신과를 포함한 상담을 받을 때도,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신고 이후 절차를 밟을 때도 친권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상담 선생님은 저에게 친권자의 동의를 받고, 청소년의 상황을 매회 공유하는 일이 ‘윤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윤리는 제가 상담을 이어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청소년이 범죄 피해를 이야기할 수 없게 만들었고, 우리가 무력감을 학습하게 했습니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안고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운 좋게 낡은 모텔에 들어갈 수 있던 겨울날 거리에는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이 더 있었습니다. 갈 곳이 없는 청소년,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에 숙박업소에서 거절당한 청소년들. 저는 저의 안전을 운에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일상의 순간순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싶지 않습니다. 

 숙박 금지가 우리를 비싼 가격에 낡은 모텔에서 잠들게 했다면, 시술을 위한 법정대리인의 동의는 우리를 불안한 수술대 위에, 원치 않은 출산 앞에 놓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의 일상을 위협하는 ‘보호’나 허락이 아니라, ‘미안하지 않은 일상’입니다. 나의 몸과 삶에 관한 결정 앞에서 다른 사람의 허락을 기다리고, ‘대타’를 구하거나 사인을 위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외쳐왔지만, 여전히 부재한 나의 몸에 대한 나의 선택권을 이제는 존중받고 싶습니다.


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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