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입장[논평] 변화는 반드시 찾아온다 -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을 맞아

위티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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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반드시 찾아온다

-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을 맞아


 오늘로부터 30년 전인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국제질병목록에서 삭제했다.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비로소 ‘질병’이나, ‘낙인’이 아닌 성적지향으로 정의된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성소수자 인권 운동은 퀴어 당사자와 앨라이를 불문하고 다양하고 활발하게 이어졌다. 최근 한국에서는 전역이라는 부당한 결정에 용감히 맞선 변희수 하사와, 수많은 위협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폭풍의 첫 날갯짓이 되어준 숙명여대의 트랜스젠더 합격자 A씨의 용기 역시 큰 의미로 남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30년이 지난 오늘, 변화는 여전히 더디고 혐오는 빠르다. 매 선거에 서로에게 ‘동성애를 찬성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정치인들, 재난 상황의 국가에서 가장 빠르게 취약해지는 소수자들, 학교나 군대 등 여러 사회 집단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는 이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더군다나 성소수자 청소년의 경우, 성소수자와 청소년이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이중의 차별을 겪는다. 성소수자로 정체화하고 커밍아웃한 청소년에게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네가 아직 미성숙하고 덜 자라서”라고 말하며 그의 성적지향을 ‘교정 가능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정부에서 배포한 성교육 표준안 역시 성소수자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전국 학교에 배포되어 성교육 자료로 쓰이는 성교육 표준안에는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니 여자가 스스로 성폭력에 대비해야 한다” 등 여성 혐오적인 표현이 사용되어 논란이 되었을뿐더러, 성소수자와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일체 제외되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의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배제한 교육은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고립감과 자기혐오를 경험하며, 비성소수자 학생들에게도 소수자를 향한 폭력과 혐오를 체득하게 만든다. 


  LGBTQ+를 성교육 표준안에 포함하라는 국제인권단체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있었으나, 2019년 9월, 제 5·6차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대한민국 본심의에서 대한민국 교육부는 성교육에 성소수자를 포함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답변했다. 성교육 시간에 동성애를 가르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며,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표준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 역시 내놓았지만, 이러한 해명은 성소수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어떠한지 보여줄 뿐이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의 삶은 가장 크게 흔들린다. 지난 5월 11일, 정부는 전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긴급재난지원금은 가구 당 지급 금액을 책정하고, 세대주만이 조회하고 수령할 수 있으며, 수령 과정에서 세대원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이유로 가정에서의 갈등을 겪으며, ‘탈가정’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리고 탈가정을 한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혼자 살며 여러 경제적, 정서적 이유로 불안할 수밖에 없으나, 동시에 가정과 국가 그 어디서도 보호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이처럼 혐오와 배제가 가득한 국가와 가정, 학교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의 존재는 ‘민감하고, 꺼림칙한 것으로’ 취급되며 지워진다. 하지만 서로의 곁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존엄하다.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은 ‘교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다양성이자 정체성이다. 누구도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폭력을, 혐오를 경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아동, 빈민,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정상성 바깥에서 살아가는 소수자를 기억하고, 이들과 연대하며 세상을 바꿔나갈 것입니다.“ 


  위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창립선언문 중 한 문장이다. 이 문장처럼 위티는 모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우리 곁의 소수자들과 함께 나중이 아닌 지금, 세상을 바꾸고자 창립한 단체다. 더 이상 ‘나중’은 없다. 성소수자 청소년에게는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진 오늘이 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오늘’을 바꾼다.



2020년 5월 17일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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