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9회 어린이날 맞이 논평
미숙해도 괜찮은 세상이 필요하다
: '-린이', 잼민이 등의 신조어 유행에 부쳐
오늘은 5월 5일, 최초의 어린이날이 선포된 지 99년째 되는 해다. 아동 문학가 방정환 선생은 어린 이를 존중하고 환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어린이날을 고안했고, 실제로 어린이날을 맞아 열린 첫 어린이 행사에서 배포된 선언문은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흔히 어린이에게 선물 주는 날로 여겨지는 어린이날은, 어린 이에 대한 해방 운동의 시작이자 내 곁의 어린이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실천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이러한 ‘어린이날’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사회 곳곳에 어린이의 입장 자체를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운영되고, 인터넷상에는 ‘잼민이 ¹’, ‘-린이’ 등 어린이를 멸시하는 유행어들이 활발히 사용되는 등 ’어린 것’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물결은 점점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 미숙하고 부족한 이를 ‘어린이’와의 합성어로 부르는 신조어(ex. 주린이, 요린이)의 유행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지난 4월 23일, “첫 도전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린이’ 인증 사진을 올려달라”며 어린이날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했다가 부적절한 언어 사용에 대해 여론의 문제 제기를 받은 바 있다. 이는 ‘-린이’라는 신조어가 공공 기관의 홍보 문구로 쓰일 만큼 사회에 만연해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에 갖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된다. 그에 비해 현 사회에서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주린이, 요린이 등의 언어 사용이 유행하는 이유는, ‘어린이’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사회의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잼민이’, ‘-린이’ 등의 언어 사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흔하게 펼쳐진다. 해당 용어의 사용자들은 인터넷 내 실제 어린이들의 말투를 따라하는 것일 뿐 “잼민이를 잼민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분명히 사회적 소수자이며, 그러므로 인터넷상 어린이의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이른바 ‘꼰대’ 말투를 재현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잼민이’, ‘-린이’는 어린 사람을 미숙하고 불완전하다고 여기고, 무시하고,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엄연한 혐오 표현이다.
더불어, 이러한 신조어의 유행은 우리 사회에서 ‘미숙함’이 어떤 속성으로 분류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어린이는 무조건 미숙하고 부족하다는 편견도 문제지만, ‘미성숙함’, ‘부족함’, ‘불완전함’, ‘감정적’ 등 흔히 소수자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속성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실제로 오랜 시간, 여성 운동은 ‘여성은 감정적이다’는 편견과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과 싸워야했다. 물론 여성과 장애인, 청소년, 아동 등 소수자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 역시 필요하다.
이를테면 비청소년(어른), 남성, 백인, 비장애인, 비성소수자는 미성숙함과 불완전함에서 자유로운가? 이들은 완전하고 성숙하기만 한 존재인가? 우리는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부정적으로만 여기며, 타자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 항상 성숙하고 완벽한 선택과 결과만을 행하며 사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완벽과 성숙’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우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태되고는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잼민이’, ‘-린이’ 등의 신조어는 우리 모두의 불완전함을 타자화하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린이’와 같은 신조어는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미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나이를 기준으로 능력을 판가름하고 나이 어린 이를 무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많은 불완전함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다. 어린이가 ‘어른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어린이의 해방은 가능할 것이다.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아 위티는 미숙함이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고,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2021년 5월 5일
제99회 어린이날을 맞아,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¹ 잼민이 트위치 투네이션(Toonation)의 어린 남자 아이 목소리 TTS인 ‘재민’을 따서 만든 신조어로, 어린 사람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인터넷 내에서 어린이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데에 주로 쓰이는 용어다.

제99회 어린이날 맞이 논평
미숙해도 괜찮은 세상이 필요하다
: '-린이', 잼민이 등의 신조어 유행에 부쳐
오늘은 5월 5일, 최초의 어린이날이 선포된 지 99년째 되는 해다. 아동 문학가 방정환 선생은 어린 이를 존중하고 환대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어린이날을 고안했고, 실제로 어린이날을 맞아 열린 첫 어린이 행사에서 배포된 선언문은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흔히 어린이에게 선물 주는 날로 여겨지는 어린이날은, 어린 이에 대한 해방 운동의 시작이자 내 곁의 어린이를 존중하고 환대하는 실천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이러한 ‘어린이날’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사회 곳곳에 어린이의 입장 자체를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운영되고, 인터넷상에는 ‘잼민이 ¹’, ‘-린이’ 등 어린이를 멸시하는 유행어들이 활발히 사용되는 등 ’어린 것’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물결은 점점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 미숙하고 부족한 이를 ‘어린이’와의 합성어로 부르는 신조어(ex. 주린이, 요린이)의 유행은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서울문화재단에서는 지난 4월 23일, “첫 도전과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린이’ 인증 사진을 올려달라”며 어린이날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했다가 부적절한 언어 사용에 대해 여론의 문제 제기를 받은 바 있다. 이는 ‘-린이’라는 신조어가 공공 기관의 홍보 문구로 쓰일 만큼 사회에 만연해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에 갖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된다. 그에 비해 현 사회에서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주린이, 요린이 등의 언어 사용이 유행하는 이유는, ‘어린이’는 부족하고 불완전하다는 사회의 보편적 인식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잼민이’, ‘-린이’ 등의 언어 사용에 대한 갑론을박이 흔하게 펼쳐진다. 해당 용어의 사용자들은 인터넷 내 실제 어린이들의 말투를 따라하는 것일 뿐 “잼민이를 잼민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분명히 사회적 소수자이며, 그러므로 인터넷상 어린이의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이른바 ‘꼰대’ 말투를 재현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잼민이’, ‘-린이’는 어린 사람을 미숙하고 불완전하다고 여기고, 무시하고,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엄연한 혐오 표현이다.
더불어, 이러한 신조어의 유행은 우리 사회에서 ‘미숙함’이 어떤 속성으로 분류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어린이는 무조건 미숙하고 부족하다는 편견도 문제지만, ‘미성숙함’, ‘부족함’, ‘불완전함’, ‘감정적’ 등 흔히 소수자의 특성으로 설명되는 속성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실제로 오랜 시간, 여성 운동은 ‘여성은 감정적이다’는 편견과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과 싸워야했다. 물론 여성과 장애인, 청소년, 아동 등 소수자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질문 역시 필요하다.
이를테면 비청소년(어른), 남성, 백인, 비장애인, 비성소수자는 미성숙함과 불완전함에서 자유로운가? 이들은 완전하고 성숙하기만 한 존재인가? 우리는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속성들을 부정적으로만 여기며, 타자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 항상 성숙하고 완벽한 선택과 결과만을 행하며 사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완벽과 성숙’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우리’는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태되고는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잼민이’, ‘-린이’ 등의 신조어는 우리 모두의 불완전함을 타자화하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린이’와 같은 신조어는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미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나이를 기준으로 능력을 판가름하고 나이 어린 이를 무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많은 불완전함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다. 어린이가 ‘어른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권리를 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어린이의 해방은 가능할 것이다. 99번째 어린이날을 맞아 위티는 미숙함이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고,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2021년 5월 5일
제99회 어린이날을 맞아,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¹ 잼민이 트위치 투네이션(Toonation)의 어린 남자 아이 목소리 TTS인 ‘재민’을 따서 만든 신조어로, 어린 사람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인터넷 내에서 어린이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데에 주로 쓰이는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