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입장 들을 수 있어야 말할 수 있다 - 3년 만의 용화여고 가해교사 1심 판결을 환영하며

위티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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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3일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집회 행진 사진을 뒷배경으로 한 논평 썸네일이다. (사진 출처: 아영)


  2021년 2월 19일, 용화여고 스쿨미투의 가해교사로 지목된 A씨가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창문 미투’를 통해 학내 성폭력이 수면위로 드러난 지 3년 만이다.

  3년 동안 고발자들은 “어떻게 선생님께 그럴 수 있냐”,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 등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학교에서 스쿨미투 고발은 우리가 속한 공간을 되돌아보고 피해자의 정의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의 권위를 해치는 일로 여겨졌다. 피해자는 진실을 밝힐 권리, 정의를 실현할 권리, 그동안의 피해에 대한 보상과 배상을 받을 권리,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학내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성고충심의위원회, 학교폭력위원회 등의 기구에는 학생들의 자리가 없었고, 고발자는 학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체로 함께할 수 없었다. 

  교육 당국과 학교 법인의 가해교사에 대한 징계는 미온적이었다. 용화여고의 경우, 스쿨미투 고발이 이루어진 지 1년 만에 18명의 가해교사 중 15명이 학교로 돌아왔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발했지만, 이들의 피해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익명으로 고발되었다는 이유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스쿨미투 운동에서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고발자들은 사법 처리 과정에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고, 때로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자 동석을 요구받았다.

  이렇듯 1심 판결이 있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로 그간 학내 성폭력이 고발될 수 없었던 이유를 보여준다. 우리는 3년의 시간 동안 고발자가 견뎌야 했을 2차 가해, 교육 당국과 사법기관의 미온적 대응에 유감을 표한다. 학내 성폭력 고발 이후의 사법적 절차는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이 아닌, 고발자가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가해교사의 징역형 선고와 법정 구속은 스쿨미투 운동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정의의 방향임을 보여준다. 스쿨미투 운동은 더 안전하고 평등한 학교 환경을 만들었으며, 여학생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용화여고 가해교사 1심 판결 이후, 우리에겐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첫째, 가해교사는 A씨만이 아니다. 용화여고 성폭력 실태 설문조사에는 고발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학내 성폭력 경험이 제보되었다. 여전히 수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학내 성폭력이 너무도 많다. 스쿨미투 운동의 상당수가 피해자가 청소년이고 정보와 자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법적 절차로 이어지지 못했다. 수사 과정에서 보호자를 대동할 것을 요구하는 관행은 많은 청소년이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된다. 경찰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학내 성폭력을 재수사하고, 청소년이 수사 절차 속에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A씨에게 주어진 1년 6개월의 형량 역시 학내 성폭력의 죗값으로는 가볍다. 사립학교의 폐쇄성과 교사-학생의 위계에 기반한,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성폭력이다. 그간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은 교육적 지도로 용인되어 왔다. 2019년 1월, 교원총연합회에서는 “미투 운동이 사회적 이슈가 되며, 교원의 정당한 교육적 지도가 방해받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는 교사가 학생의 신체를 일상적으로 통제하고 침범하는 것이 ‘폭력’이자 ‘범죄’로 제대로 인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학내 성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가해교사를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학교는 가해교사에 대한 처벌만으로 안전해지지 않는다. 교육청과 사법 기관의 역할은 한계적이며, 학내 성폭력 고발 이후에도 학교에서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 학교 내부에서 학내 성폭력을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내 성폭력 사안 처리에 한정된 대책이 아니라, 학내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한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모든 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내용의 성교육,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차별을 인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법과 차별금지법 등 다양한 과제가 남아있다.

  스쿨미투 고발 이후 정부와 교육청 차원의 대책이 제안되었지만, 그중 대부분은 고발자의 현실에 맞닿아 있지 않았다. ‘당연한 당신의 권리, 당당히 신고하라’고 말하면서도, 익명 신고는 사실상 제대로 처리되기 어려운 온라인 신고센터가 대표적인 예다. 스쿨미투는 일부 가해교사에 대한 고발을 넘어, 일상적인 성폭력 문화와 침묵을 강요해온 학교 내의 권력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스쿨미투 이후, 우리는 사건 처리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평등과 학생인권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학교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3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우리는 ‘들을 수 있어야 말할 수 있다’라는 평범한 진실을 마주한다. 고발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말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 이제는 한 사람의 용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듣기를 통해 학교를 바꿔나갈 때다. 우리는 앞으로도 침묵과 은폐를 강요받는 학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속적으로 연대할 것임을 약속한다.

 

2021.02.24.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우리는 ‘들을 수 있어야 말할 수 있다’라는 평범한 진실을 마주한다. 고발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만 말할 수 있는 사회는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 이제는 한 사람의 용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듣기를 통해 학교를 바꿔나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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