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입장혐오와 차별이 아닌 평등과 인권을 검토하라 - 서울시의회의 ‘성·생명윤리규범 조례안’ 교육청 검토 요청을 규탄하며

위티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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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혐오와 차별이 아닌 평등과 인권을 검토하라

- 서울시의회의 ‘성·생명윤리규범 조례안’ 교육청 검토 요청을 규탄하며


지난 1월 25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청에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 검토 의견을 요구했다. 이 조례에서 일컫는 '성·생명윤리'는 "성관계는 혼인관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원치 않는 성관계를 거부할 소극적 권리로 제한해야 한다" 등 반인권적이고 비논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생물학적 성”에 초점을 둔 성교육을 강조하며 조기성애화, 성 정체성 혼란, HIV/AIDS 등의 “유해성”을 교육 내용에 넣도록 하고 있다. 학생의 자기결정권보다 부모의 자녀교육권을 “원칙적 우위”에 두고 교육감이 구성하는 조사관에 조례 위반을 명목으로 교사의 교육행위부터 학교시설 내의 도서, 영상물 등을 조사하고 징계를 권고할 권리까지 부여했다.

해당 조례안은 스쿨미투 계기로 제정된 「서울시교육청 성평등 교육환경 조성 및 활성화 조례」를 전면으로 위반한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감에게는 성평등 교육환경을 조성하고, 교육현장 구성원에 대한 성차별·성폭력을 근절할 책임이 있다. 학생의 성과 재생산권을 침해하고, 헌법의 행복추구권(제10조), 평등권(제11조), 사생활의 자유(제17조), 그에 기반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제5조), 소수자 학생의 권리보장(제28조) 등을 위반하는 위헌적 조례안이다.

서울시의회 교육전문위원실은 해당 조례가 시민단체 제안으로 검토되었다고 전했다. 설사 이 해명이 진실이더라도, 서울시의회의 행정은 요청은 청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일부 보수세력의 위헌적이고 편향적 의견에 시의회 차원의 공식적 권위를 부여한 부적절한 행정이다. 특히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등 학생 인권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해당 조례안의 검토 요청은 그러한 입법을 이어가겠다는 의회의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당 조례안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원치 않는 성관계를 거부할 소극적 권리로 제한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규정이다. 권리와 즐거움을 알아야 폭력도 구분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성행위를 거부할 권리'는 그 자체로, 성적 즐거움을 비롯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탐구하고 알아갈 권리, 특정한 관계나 행위에 있어 자신의 판단을 존중받을 권리, 타인의 요구를 거부한 이후에도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경제적 자원을 확보할 권리 등 성적 권리 전반을 포괄한다. 위티는 스쿨미투 고발 이후,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기반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성을 금기시하고 성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려 하는 교육환경이 청소년을 성폭력으로부터 취약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소년 대상 성폭력의 해법이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된다면, 청소년이 위험과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과 사회적 권리는 박탈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조례안은 '부모의 자녀교육권' 등을 강조하며, 청소년의 성적 실천에 대한 비청소년의 통제와 탄압이 정당화한다. 우리는 그동안 청소년의 성적 실천에 대한 비청소년의 통제와 탄압이 '보호'가 아닌, '보호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왔음을 알고 있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이 청소년 피해자들에게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말을 '협박'으로 사용한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부모나 어른의 권력을 확대하는 것은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한 해법이 될 수 없다.

퇴행의 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성평등 교육과 학교에 대한 정부의 미약한 의지에 뒤따르듯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이에 서울시의회는 성소수자를 삭제하는 개정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성소수자를 ‘성별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 성평등을 ‘성에 대한 편견’으로 변경하고 섹슈얼리티 용어를 삭제한 ‘2022 초·중등학교 및 특수학교 교육과정'을 확정, 발표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교육부가 “교과서와 교육정책에서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등의 용어를 삭제하려는 계획”을 확정했다면서 "위와 같은 계획이 국제인권규범에 명시된 교육권과 건강권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학생인권조례 폐지 역시 “성별지향과 성별정체성 차별에 대한 보호를 축소하려는 시도”라는 의견을 전해왔다. 한국의 성소수자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 심화되는 정책적 상황을 우려하며 정부의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시민의 의견이라는 명목으로, 합의된 조례를 무시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을 버리는 퇴행적 행보를 정당화하고 있지 않은가? 서울시의회는 본인들의 의무를 인지하고 소수자들의 삶에 책임과 역할을 다하라. 진정 검토해야 하는 것은 혐오와 차별, 폭력이 아니라 청소년의 삶을 변화시킬 인권과 평등의 목소리다.


2023.02.03.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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