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입장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다 - 배스킨라빈스 아동 성상품화 광고를 비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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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2019-07-06 17:53
그렇다면 아동의 성적주체성이 립스틱 등 화장과 노출있는 옷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건가요. 본문에서 지적한 바로 그 '성인남성의 성적판타지'가 꾸밈노동을 한 여성의 섹슈얼한 모습인데요. 성인남성의 성적판타지 속에 꾸밈노동을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여성은 없습니다. 롤리타에서도 붉은 립스틱과 노출많은 의상이 돌로레스의 섹슈얼요소로 사용되고, 그 모습을 관음하는 남자주인공 험버트는 돌로레스가 성숙한 어른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을 유혹하는 여자라고 여기죠. 물론 그건 험버트의 소아성애적 시선이고 당연히 모든 죄와 책임이 험버트에게 있지만, '돌로레스가 스스로를 성숙하게 보이고 싶어할 때 왜 하필 붉은립스틱과 노출심한 옷을 선택했을까' 하는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여성의 성적대상화가 여성자신에게도 꾸밈노동으로 자연스럽게 세뇌되면서, 결국 남성의 성적판타지에 맞춰 스스로 종속되어버리는 결과가 된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나요. 인디언의 꾸밈, 치장을 생각해보세요. 인디언이 몸에 문양을 그리고 꾸미는 것에 젠더적인 요소가 있나요. 반면 문명화된 사회의 여성들은 '남성의 시선에서 매력적이라 여겨지는 이미지'대로 모든 걸 맞춘 꾸밈이죠. 여아의 '여성성으로 통용되는 꾸밈'이 문제인건, 남아의 경우로 바꿔 생각해보면 더욱 명료해집니다. 남자아이가 성적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립스틱을 바르고 과하게 달라붙거나 노출있는 옷을 입나요. 꼭 성적 주체성이 아니더라도, 남아들은 자기외모를 바꾸기보다 행동으로 표출하죠. 반면 여아들은 성인여성의 외모를 모방하는데, 그 모방의 대상이 되는 성인여성들이 심각하게 성적대상화되어 스스로 코르셋을 조이는 사회에서, 정말 여아의 화장이 문제가 없을까요. 여아에게까지 성인여성들의 꾸밈노동이 자연스럽게 세뇌되어 초등학생임에도 화장을 하고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며 스스로를 옥죄는 사회에서, 아동의 성적주체성을 아동 스스로가 '립스틱(남성의 시선에 맞춘 여성의 입술)'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책임한 생각인 듯 합니다.
위티2019-07-09 01:46
안녕하세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집행위원회입니다.
저희가 ‘립스틱’이라는 말에 내포하고 싶었던 것은 ‘아동의 성적 표현’이었습니다. 상징이 다소 모호할 수 있으나, 논평 전반을 읽는다면 의도한 바를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은 깨끗하고 천진해야 한다’는 통념에 기대, 이 광고를 비판했습니다. 여성 아동이 성에 대해 말할 수 없고, 성적 표현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성 아동의 성은 남성 비청소년의 판타지로 구현됩니다. 이 논평은 아동 성상품화 광고에 대한 문제제기가 ‘상품화’가 아닌 ‘성 그 자체’에 맞춰져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정확히는 ‘아동청소년이 성적 표현을 하는 것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도 해당 광고가 ‘여성성으로 통용되는 꾸밈’을 강요하는 점, 전형적인 성적 클리셰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여성성의 강요에서 벗어난 다양한 꾸밈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여성 청소년의 성이 남성 비청소년의 판타지로 구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여성 청소년의 꾸밈과 성적 주체성을 제재하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여성이 강요된 꾸밈에서 벗어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여성에게 아무런 성적 표현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의 꾸밈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는 사회일 것입니다. 여성 아동의 화장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방식이 여성 아동이 ‘성적 표현을 하는 것’ 혹은 ‘꾸밈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제재하는 것에는 큰 간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남성 비청소년 중심 사회의 판타지에 구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욕망을 실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회적 제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성에 대한 남성 비청소년 중심의 담론이나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어 향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해 아예 말하지 말라”고 하거나, “우리의 성은 남성 비청소년의 관점에서만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 맞서, 앞으로도 우리 안의 다양한 성적 욕망을 탐구하고, 실현해나가고 싶습니다. 단체에서 하반기에 청소년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여성 아동의 성적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들은 단체의 활동을 통해 구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질문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립스틱’이라는 말에 내포하고 싶었던 것은 ‘아동의 성적 표현’이었습니다. 상징이 다소 모호할 수 있으나, 논평 전반을 읽는다면 의도한 바를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동은 깨끗하고 천진해야 한다’는 통념에 기대, 이 광고를 비판했습니다. 여성 아동이 성에 대해 말할 수 없고, 성적 표현을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여성 아동의 성은 남성 비청소년의 판타지로 구현됩니다. 이 논평은 아동 성상품화 광고에 대한 문제제기가 ‘상품화’가 아닌 ‘성 그 자체’에 맞춰져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정확히는 ‘아동청소년이 성적 표현을 하는 것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도 해당 광고가 ‘여성성으로 통용되는 꾸밈’을 강요하는 점, 전형적인 성적 클리셰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여성성의 강요에서 벗어난 다양한 꾸밈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고, 여성 청소년의 성이 남성 비청소년의 판타지로 구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여성 청소년의 꾸밈과 성적 주체성을 제재하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을 봅니다. 여성이 강요된 꾸밈에서 벗어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여성에게 아무런 성적 표현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의 꾸밈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는 사회일 것입니다. 여성 아동의 화장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방식이 여성 아동이 ‘성적 표현을 하는 것’ 혹은 ‘꾸밈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제재하는 것에는 큰 간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남성 비청소년 중심 사회의 판타지에 구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욕망을 실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회적 제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성에 대한 남성 비청소년 중심의 담론이나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주체가 되어 향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해 아예 말하지 말라”고 하거나, “우리의 성은 남성 비청소년의 관점에서만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 맞서, 앞으로도 우리 안의 다양한 성적 욕망을 탐구하고, 실현해나가고 싶습니다. 단체에서 하반기에 청소년 섹슈얼리티에 대한 사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여성 아동의 성적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정들은 단체의 활동을 통해 구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질문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름2019-07-13 13:25
그러니까, 말씀하신 '아동청소년이 성적 표현을 하는 것 그 자체를 긍정한다'는 의도가, '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다'라는 논평제목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세번 이상 정독했으나 아동의 주체적인 성에 대한 발화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놓은 부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사 제목과 본문의 뉘앙스에 기반해 '화장(립스틱)이 여아의 주체적인 성적 발화임을 인정해라'라고 읽혀질 수 밖에 없죠. 게다가 중요한 건, 첫 댓글에서도 언급했던 '아동의 성적 주체성, 성적 표현은 아동 스스로의 *행동*으로 나타나야한다'는 것입니다. 설명하셨던 '외모의 다양한 꾸밈'이 아니라요. 남아들은 본인 성기를 만지는등의 행동으로 성적 표현을 합니다. 오로지 감각에 의존한, 본능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죠. 그런데 여아들은? 여아의 다양한 외모 꾸밈을 성적 표현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게 과연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오롯이 주체적인 결과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다양한 꾸밈이라 해도 그건 여아의 주체적인 성적 표현이 될 수 없습니다. 여아가 외모를 바꾸는 게 아니라, 오롯이 육체적 감각에 따른 말과 행동을 어른들의 시선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주체적인 성적 표현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밑의 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2951225
망고2020-04-20 10:08
무례하신 분들이 많으시네요. 특히 위에 개똥같은 소리라고 하신분.. 정말 개똥보다도 못한 인간이네요.
또 위에 기사 공유해주신 이름님. 왜 이렇게 따지듯이 말하시는지.. 굳이 말하자면, 문제는 '립스틱'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가 되겠죠. 립스틱을 비롯해 성인 남성의 판타지로 존재하는 꾸밈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도 충분히 내용에 들어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그 내용만으로도 또 다른 논평이 나올 수 있겠죠. 이 논평은 아동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지적과 그리고 성상품화와 성적자기표현의 구분/차별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전형적인 성인 남성들이 소비하는 성적 클리셰 조차도 성적자기표현이 없는(순수한) 아이(여성)이라는 것. 철저히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해석되는 아이의 모습인거죠.
또 위에 기사 공유해주신 이름님. 왜 이렇게 따지듯이 말하시는지.. 굳이 말하자면, 문제는 '립스틱'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가 되겠죠. 립스틱을 비롯해 성인 남성의 판타지로 존재하는 꾸밈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도 충분히 내용에 들어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그 내용만으로도 또 다른 논평이 나올 수 있겠죠. 이 논평은 아동 성상품화에 대한 문제지적과 그리고 성상품화와 성적자기표현의 구분/차별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전형적인 성인 남성들이 소비하는 성적 클리셰 조차도 성적자기표현이 없는(순수한) 아이(여성)이라는 것. 철저히 성인 남성의 시선으로 해석되는 아이의 모습인거죠.
6월 28일, 아이스크림 업체 배스킨라빈스의 광고가 ‘성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광고의 모델이 성인이 아닌 여성 아동이라는 점이 강조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해당 광고는 우유가 관을 타고 치솟는 장면, 입술과 목덜미가 클로즈업되며 이어지는 “이런 여름은 처음이야”라는 내레이션 등 전형적인 성적 클리셰를 포함하고 있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응은 “이게 왜 성상품화냐”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상품화에 무감한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일상적으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표정과 동작을 하는 여성 방송인을 접한다. 여성을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여성 아동 역시 성상품화의 대상이 된다. 지난 2월에는 아동 의류를 ‘섹시 토끼의 오후’ 등의 이름을 담아 판매하거나, 아동 속옷 착용 컷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쇼핑몰이 연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립스틱, ‘아동복’ 같지 않은 차림 등 아동의 성적 표현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호받아야 하고, ‘아이다워'야 하는 아동이 무력하고 수동적인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들은 천진하고 순수한 아동 이미지를 부각한 다른 광고를 제시하며, 이것이야 말로 ‘아이다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동의 성적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아동의 성적 표현이 성인 남성의 시각으로만 구현되는 현실이다.
그런 소녀는 없다
‘아이다움’은 무엇일까? 대부분 밝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흔히 아동을 성적 대상화했다고 여겨지는 ‘로리타 컨셉’은 붉은 뺨, 풀린 동공, 몽환적인 표정 등 성적으로 무지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기에, 오히려 침범하고 싶은 매혹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아동 성상품화에 저항하는 일은 ‘아이다움’의 통념을 부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밝고 순수하기만한 아동은 없다. 아동이 무성적 존재라는 믿음은 아동이 스스로 성과 욕망에 대해 해석하고 발화할 권리를 박탈한다. 여성 아동은 성인 남성에 의해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나, 자신의 욕망을 발화할 수는 없는 존재가 된다.
이제는 성인 남성의 판타지로만 소비되어온 여성 아동의 성적 주체성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그들의 판타지에 등장하는 그런 ‘소녀’는 없다. 성인 남성이 부여한 뻔한 성적 클리셰를 넘어, 아동이 자신의 성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받아야 할 개인의 권리이지만,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책임을 지는 권리이기도 하다. 존재하는 위력은 반드시 행사된다. 남성이 압도적인 젠더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나이위계가 막강한 사회에서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취약하다. 심지어는 아동은 성적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젠더위계를 이유로 여성에게 이성애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이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동이 겪는 성적 폭력과 착취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들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가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배스킨라빈스 광고 논란을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성상품화에 무감한 사회인지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아동에 대한 성상품화는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와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 아동에 대한 성적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을 먼저 멈춰야 한다. 또한 아동은 순수하고 무지해야 한다는 또 다른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동을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성적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동에 대한 성적 폭력을 막기 위해, 젠더와 나이에 따른 위계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최근, 10세 아동을 성폭력한 남성이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판례가 있었다. 본디 성폭력특례법상 강간 혐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로 기소된 것과는 달리, 2심에서는 의제강간죄가 적용되어 3년이라는 낮은 형량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러한 판례는 대한민국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 부재, 특히나 아동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절실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판례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가 아동 성폭력 사안에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무조건 ‘강간’이라고 간주하는 제도는 오히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의제강간연령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에 대해 나이위계 등의 요소를 고려해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나 법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이 성적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라, 여성 청소년의 성을 성인 남성의 판타지로 소비해온 사회다. 또한 여성 청소년을 무성적 존재로 여기며, 이들의 성적 권리를 박탈해온 사회다. 아동의 성적 권리와 실천이 성인 남성에 의해 소비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2019년 7월 5일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