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입장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다 - 배스킨라빈스 아동 성상품화 광고를 비판하며

위티
2019-07-05
조회수 7930


  6월 28일, 아이스크림 업체 배스킨라빈스의 광고가 ‘성상품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광고의 모델이 성인이 아닌 여성 아동이라는 점이 강조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해당 광고는 우유가 관을 타고 치솟는 장면, 입술과 목덜미가 클로즈업되며 이어지는 “이런 여름은 처음이야”라는 내레이션 등 전형적인 성적 클리셰를 포함하고 있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응은 “이게 왜 성상품화냐”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상품화에 무감한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일상적으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표정과 동작을 하는 여성 방송인을 접한다. 여성을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여성 아동 역시 성상품화의 대상이 된다. 지난 2월에는 아동 의류를 ‘섹시 토끼의 오후’ 등의 이름을 담아 판매하거나, 아동 속옷 착용 컷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쇼핑몰이 연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립스틱, ‘아동복’ 같지 않은 차림 등 아동의 성적 표현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호받아야 하고, ‘아이다워'야 하는 아동이 무력하고 수동적인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들은 천진하고 순수한 아동 이미지를 부각한 다른 광고를 제시하며, 이것이야 말로 ‘아이다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동의 성적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아동의 성적 표현이 성인 남성의 시각으로만 구현되는 현실이다.


그런 소녀는 없다

  ‘아이다움’은 무엇일까? 대부분 밝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흔히 아동을 성적 대상화했다고 여겨지는 ‘로리타 컨셉’은 붉은 뺨, 풀린 동공, 몽환적인 표정 등 성적으로 무지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기에, 오히려 침범하고 싶은 매혹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아동 성상품화에 저항하는 일은 ‘아이다움’의 통념을 부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밝고 순수하기만한 아동은 없다. 아동이 무성적 존재라는 믿음은 아동이 스스로 성과 욕망에 대해 해석하고 발화할 권리를 박탈한다. 여성 아동은 성인 남성에 의해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지나, 자신의 욕망을 발화할 수는 없는 존재가 된다.

  이제는 성인 남성의 판타지로만 소비되어온 여성 아동의 성적 주체성을 되찾을 때가 되었다. 그들의 판타지에 등장하는 그런 ‘소녀’는 없다. 성인 남성이 부여한 뻔한 성적 클리셰를 넘어, 아동이 자신의 성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받아야 할 개인의 권리이지만, 동시에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할 책임을 지는 권리이기도 하다. 존재하는 위력은 반드시 행사된다. 남성이 압도적인 젠더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나이위계가 막강한 사회에서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취약하다. 심지어는 아동은 성적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는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젠더위계를 이유로 여성에게 이성애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이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동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동이 겪는 성적 폭력과 착취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들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가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배스킨라빈스 광고 논란을 통해 이 사회가 얼마나 성상품화에 무감한 사회인지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아동에 대한 성상품화는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와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 아동에 대한 성적 폭력을 멈추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을 먼저 멈춰야 한다. 또한 아동은 순수하고 무지해야 한다는 또 다른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동을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성적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동에 대한 성적 폭력을 막기 위해, 젠더와 나이에 따른 위계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최근, 10세 아동을 성폭력한 남성이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판례가 있었다. 본디 성폭력특례법상 강간 혐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로 기소된 것과는 달리, 2심에서는 의제강간죄가 적용되어 3년이라는 낮은 형량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러한 판례는 대한민국 재판부의 성인지감수성 부재, 특히나 아동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현실을 절실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판례는 미성년자의제강간죄가 아동 성폭력 사안에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무조건 ‘강간’이라고 간주하는 제도는 오히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의제강간연령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에 대해 나이위계 등의 요소를 고려해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나 법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이 성적 권리를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문제는 립스틱이 아니라, 여성 청소년의 성을 성인 남성의 판타지로 소비해온 사회다. 또한 여성 청소년을 무성적 존재로 여기며, 이들의 성적 권리를 박탈해온 사회다. 아동의 성적 권리와 실천이 성인 남성에 의해 소비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2019년 7월 5일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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