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여학생의 몫이 아니다
- 여고생의 '무례한 위문편지' 논란에 부쳐
지난 1월 11일, 서울의 모 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보낸 위문편지가 논란이 되었다. 위문편지에는 "추운 날씨에 나라를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군 생활 힘드신가요? 그래도 열심히 사세요^^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해당 편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자는 “다들 예쁜 편지지에 받았는데, 의욕도 떨어지고 속상하다”는 수신인의 반응을 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고생이 장병을 조롱했다며,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에게 무례한 언사’라는 반응을 들끓었다. “하기 싫으면 교사에게 항의하거나, 편지 작성 자체를 거부하면 되지, 왜 굳이 무례한 편지를 쓰냐”는 불만도 함께였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학생의 무례함이 아니라, 여학생이 장병을 ‘위로’하는 ‘위문’ 편지를 써야 했던 까닭이다. 학생들은 편지 작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논란 직후, 학교 측에서 편지를 쓰지 않으면 봉사시간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편지지도 학생 자비로 구매해야 했으며, 편지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현장에 있었던 한 네티즌은 “당시에 위문편지 쓰라고 했을 때 반발 엄청 심했는데 학교 측에서 가이드까지 나눠주면서 쓰라고 시켰고요”라며 “애들이 반발한답시고 단체로 저런 편지만 써서 보냈다”고 말했다.
위 네티즌의 말처럼 학생들이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학교 시스템에서 부당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례한 표현이라고 불리우는 편지를 쓰는 것”뿐이다. 현재의 공교육은 대학 진학을 절대적 목표로 설정하고, 봉사 점수를 받으며 내신을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학생의 진로, 생활 등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교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2018년부터 이어진 스쿨미투 고발 역시 학교 내에서의 폐쇄적인 학교 공간에서의 2차 가해, 혹은 대학 입시에 미칠 영향들을 우려해 대부분 졸업 후에 이루어졌다. 게다가 청소년이 성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청소년이 ‘어른’의 지시에 거부하거나 질문하는 것 자체를 ‘무례하다’고 여긴다.
편지 내용이 문제가 되자, 네티즌들은 해당 여고의 학생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SNS에 찾아가 인신공격과 협박, 조롱 등을 퍼붓고 개인정보를 유포했다. 조롱과 비난에 시달린 학생들은 결국 “자신이 페미니즘이라고 쓰고 남혐이라고 읽는 행위에 동조하고 있지 않으며, 국군장병들에게 존경하고 감사한다”는 댓글을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단순히 ‘무례함’으로부터 기인했을까? ‘어리고 군대도 가지 않는 여자애들’이 ‘군복무의 신성함을 침해하는’ 것에서 오는 분노이지는 않나? 편지의 내용들을 ‘남혐’으로 치부하고, 학생의 성별을 꼬집어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정서는 성차별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결국 재학생이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해명한 것은 게시글이 논란이 되는 과정 자체가 ‘불공평하게 남자만 군대를 간다’는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명백한 백래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관례가 여자고등학교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군대 내 ‘위문’의 목적을 잘 드러낸다. 논란이 된 학교의 재학생이 공개한 편지 지침에는 쓰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말라는 조항 역시 존재한다. 작성자 여학생의 개인정보를 노출했을 때, 수신 받은 군인이 찾아오거나 성희롱 등의 가해를 가하는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특정하는 것만으로 위협과 우려를 겪어야 한다.
현재의 위문문화는 여성과 청소년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위문문화는 여성과 청소년을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군대 문화에 대응하여 약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위치에 둔다. 학생들이 위문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는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여학생’들이 상냥하고 친절한 편지를 작성해,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정서로부터 출발한다. 이와 같은 문화는 군대에 가지 못한다/않는다는 이유로 여성과 청소년을 '2등 시민'으로 만들고 여학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과 군대의 남성 중심적 권력 위계를 강화한다.
위문문화는 군대의 억압적 기능을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군대는 개인의 기본권을 통제하고, 구성원 간 수직적 질서를 전제하며, 제대로 된 보상 없는 노동을 강제한다. 위문행사는 자유를 통제하고, 욕구를 억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군대의 일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지금 군대에 필요한 것은 여성들이 공연을 하거나 편지를 쓰는 등 1년에 몇 번 있는 단발성의 여성을 대상화하는 ‘위로’나, 다른 구성원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 ‘군가산점제’가 아니다. 군대엔 위로가 아닌 변화가 필요하다.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군대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선 군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개별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조직을 만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위문편지에 대한 마녀사냥을 당장 중단하라. 위문편지는 위로하지 않는다. 폭력을 재생산할 뿐이다. 군인들이 위력적 공간 내에서 납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폭력적 문화와 노동들에 복무해야 하는 것처럼, 학생위문 편지를 쓰는 것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용인되는 폭력이다. 사건이 벌어진 학교에서는 “향후 어떠한 행사에서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와 통일 안보의 중요성 인식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교가 해야 할 것은 사과가 아니라 인터넷 상의 인신공격, 개인정보유포, 디지털성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해당 사건이 논의되는 과정이 학교와 군대로 하여금 그간 존재해온 폭력적 문화를 성찰하고, 수평적이고 인권을 보장하는 조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위티는 위계 없고 인권친화적인 학교와 군대, 그리고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해 나갈 것이다.
2022년 1월 13일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위로는 여학생의 몫이 아니다
- 여고생의 '무례한 위문편지' 논란에 부쳐
지난 1월 11일, 서울의 모 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보낸 위문편지가 논란이 되었다. 위문편지에는 "추운 날씨에 나라를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군 생활 힘드신가요? 그래도 열심히 사세요^^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해당 편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자는 “다들 예쁜 편지지에 받았는데, 의욕도 떨어지고 속상하다”는 수신인의 반응을 전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고생이 장병을 조롱했다며,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에게 무례한 언사’라는 반응을 들끓었다. “하기 싫으면 교사에게 항의하거나, 편지 작성 자체를 거부하면 되지, 왜 굳이 무례한 편지를 쓰냐”는 불만도 함께였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학생의 무례함이 아니라, 여학생이 장병을 ‘위로’하는 ‘위문’ 편지를 써야 했던 까닭이다. 학생들은 편지 작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논란 직후, 학교 측에서 편지를 쓰지 않으면 봉사시간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편지지도 학생 자비로 구매해야 했으며, 편지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현장에 있었던 한 네티즌은 “당시에 위문편지 쓰라고 했을 때 반발 엄청 심했는데 학교 측에서 가이드까지 나눠주면서 쓰라고 시켰고요”라며 “애들이 반발한답시고 단체로 저런 편지만 써서 보냈다”고 말했다.
위 네티즌의 말처럼 학생들이 거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학교 시스템에서 부당한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례한 표현이라고 불리우는 편지를 쓰는 것”뿐이다. 현재의 공교육은 대학 진학을 절대적 목표로 설정하고, 봉사 점수를 받으며 내신을 관리할 것을 요구한다. 학생의 진로, 생활 등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교사의 지시를 거부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2018년부터 이어진 스쿨미투 고발 역시 학교 내에서의 폐쇄적인 학교 공간에서의 2차 가해, 혹은 대학 입시에 미칠 영향들을 우려해 대부분 졸업 후에 이루어졌다. 게다가 청소년이 성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청소년이 ‘어른’의 지시에 거부하거나 질문하는 것 자체를 ‘무례하다’고 여긴다.
편지 내용이 문제가 되자, 네티즌들은 해당 여고의 학생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SNS에 찾아가 인신공격과 협박, 조롱 등을 퍼붓고 개인정보를 유포했다. 조롱과 비난에 시달린 학생들은 결국 “자신이 페미니즘이라고 쓰고 남혐이라고 읽는 행위에 동조하고 있지 않으며, 국군장병들에게 존경하고 감사한다”는 댓글을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단순히 ‘무례함’으로부터 기인했을까? ‘어리고 군대도 가지 않는 여자애들’이 ‘군복무의 신성함을 침해하는’ 것에서 오는 분노이지는 않나? 편지의 내용들을 ‘남혐’으로 치부하고, 학생의 성별을 꼬집어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정서는 성차별적인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결국 재학생이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해명한 것은 게시글이 논란이 되는 과정 자체가 ‘불공평하게 남자만 군대를 간다’는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명백한 백래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관례가 여자고등학교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군대 내 ‘위문’의 목적을 잘 드러낸다. 논란이 된 학교의 재학생이 공개한 편지 지침에는 쓰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말라는 조항 역시 존재한다. 작성자 여학생의 개인정보를 노출했을 때, 수신 받은 군인이 찾아오거나 성희롱 등의 가해를 가하는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특정하는 것만으로 위협과 우려를 겪어야 한다.
현재의 위문문화는 여성과 청소년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위문문화는 여성과 청소년을 남성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군대 문화에 대응하여 약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위치에 둔다. 학생들이 위문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는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여학생’들이 상냥하고 친절한 편지를 작성해,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줘야 한다는 정서로부터 출발한다. 이와 같은 문화는 군대에 가지 못한다/않는다는 이유로 여성과 청소년을 '2등 시민'으로 만들고 여학생에 대한 스테레오타입과 군대의 남성 중심적 권력 위계를 강화한다.
위문문화는 군대의 억압적 기능을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군대는 개인의 기본권을 통제하고, 구성원 간 수직적 질서를 전제하며, 제대로 된 보상 없는 노동을 강제한다. 위문행사는 자유를 통제하고, 욕구를 억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군대의 일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지금 군대에 필요한 것은 여성들이 공연을 하거나 편지를 쓰는 등 1년에 몇 번 있는 단발성의 여성을 대상화하는 ‘위로’나, 다른 구성원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 ‘군가산점제’가 아니다. 군대엔 위로가 아닌 변화가 필요하다. 폭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군대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선 군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개별성을 존중하는 평등한 조직을 만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위문편지에 대한 마녀사냥을 당장 중단하라. 위문편지는 위로하지 않는다. 폭력을 재생산할 뿐이다. 군인들이 위력적 공간 내에서 납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폭력적 문화와 노동들에 복무해야 하는 것처럼, 학생위문 편지를 쓰는 것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용인되는 폭력이다. 사건이 벌어진 학교에서는 “향후 어떠한 행사에서도 국군 장병에 대한 감사와 통일 안보의 중요성 인식이라는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교가 해야 할 것은 사과가 아니라 인터넷 상의 인신공격, 개인정보유포, 디지털성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해당 사건이 논의되는 과정이 학교와 군대로 하여금 그간 존재해온 폭력적 문화를 성찰하고, 수평적이고 인권을 보장하는 조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위티는 위계 없고 인권친화적인 학교와 군대, 그리고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해 나갈 것이다.
2022년 1월 13일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