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허락은필요없다[나에게 필요했던 건 허락이 아니라,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

위티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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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했던 건 허락이 아니라,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

 신분증이 없었을 때, 저는 늘 조마조마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노래방이나 음식점에 들어설 때에도, 편의점에서 콘돔을 달라고 할 때에도 늘 쉽게 말이 꺼내지지 않았습니다. 신분증을 요구 받을 때에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마치 집에 두고 나온 것 마냥 태연한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골목을 나서면, 갈 곳이 없었습니다. 집에도, 학교에도, 아직 불빛이 반짝이는 건물들 사이에서도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가끔은 청소년기를 지난 친구의 신분증을 빌려, ‘저도 동갑인 친구에요!’라고 말하며 이름을 빌리곤 했습니다.

 청소년기, 폭력에 가까운 섹스들을 경험할 때에 부모님에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주최한 캠프에 다녀온 줄로만 아는,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늦게 들어온 줄 아는 부모님에게 내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매번의 싸움 끝에 “내 말 안들을 거면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으니까요. 언젠가 가방 깊숙이에 넣어둔 콘돔을 들켰을 때에, 어머니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설픈 연기와 함께 성교육에서 받은 콘돔이라고 둘러댔습니다. 어머니가 어설픈 변명에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은 채 방의 불을 껐을 때, 어두운 방안에서 저는 오래 울었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경험했던 폭력과 혼란은 아주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았습니다.

 청소년기가 지난 이후, 저는 종종 ‘이름을 빌려주는 일’을 합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응급피임약 처방을 받지 못했다는 동료에게 다음번에는 나한테 연락하라는 말을 합니다.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 병원에 남성 파트너를 데려가야 한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듣고, 내 주변의 남성들의 이름을 빌리려 연락을 합니다. 친구랑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모임에 나왔다는 동료를 위해, 친구인 척 위장하고 전화를 대신 받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의 제가 ‘모범생’으로, ‘착한 딸’로, ‘무성적인 존재’로 나의 이름을 대신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갑니다. 성을 경험하는 여성 청소년에 대한 낙인이 없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청소년이 자신의 이름 그대로 살아가더라도 위기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정부의 ‘낙태죄’ 개정입법예고안에 반대합니다. 내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니라,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양지혜

#낙태죄폐지 #허락은필요없다 #청소년_임신중지권_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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