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입장#허락은필요없다[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무너지는 일상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위티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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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존재는 불법이었습니다. 청소년의 성은 일탈이나 불법으로 여겨졌고, 나의 존재는 지워졌습니다. 1년 반만의 정부의 개정입법예고안 발표 이후, 여전히 나의 존재는 부재합니다. 그곳에 우리의 자리는 없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설명하고, 증명하고, 허락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지워진 이들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무너지는 일상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10월 7일, 대한민국 정부는 ‘낙태죄’ 폐지에 따른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입법예고안을 발표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불합치 판결에 아모르 파티에 맞추어 다같이 춤을 추며 기뻐했던 작년이, ‘낙태죄 폐지’라고 쓰인 스티커를 이제는 쓸 일이 없겠다는 괜스런 투덜거림이 무색하게도, 실질적으로 낙태죄를 유지하겠다는 국가의 굳건한 다짐이 담긴 예고안이었습니다.

 만 18세 미만의 모든 청소년은 시술을 위해 상담사실확인서를 제출해야하고,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신 중지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보며 나는 여전히 어린 여성인 나의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성관계 이후 좀처럼 생리를 하지 않는다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털어놓는 이야기에 “그러게, 콘돔을 썼어야지”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임신 중절에 필요한 수술비를 주지 못하겠다는 남성 파트너의 말에 삽시간에 무너지던 친구의 일상에 함께 그를 비난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온통 불투명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산부인과의 창 앞에서 하염없이 망설이던 나를 떠올렸습니다.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결국 나와 내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온갖 부조리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무력감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일들을 하나 하나 포기해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임신 중절 수술에 남성 파트너의 동의가 필수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우리의 현실이 이 병원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가늠해보았습니다. 여성들의, 청소년들의, 친구들의, 내 일상은 너무 쉽게 자주 무너졌지만, 그 일상을 다시 세워올릴 힘은 우리가 아니라 까마득한 저 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건 허락이 아닌, 무너지는 우리의 일상을 붙잡을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단지 내 몸과 의사를 존중할 권리가 남성 파트너나 국가,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기를 바랐습니다. 콘돔을 쓰지 않은 성관계로 걱정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왜 콘돔을 쓰지 않았냐는 무력한 말 대신 조금 더 나은 미래로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내 일상이 때때로 너무 쉽게 무너지더라도, 내가 직접 그 일상을 되돌려 놓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 국가는 우리의 일상을 누구의 ‘허락’에 묶어놓고 있습니까?

최유경

#낙태죄폐지 #허락은필요없다 #청소년_임신중절권_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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