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유해한 것은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아니다
- 여성가족부의 룸카페 규제 지침에 부쳐-
지난 1일, 여성가족부는 모텔과 유사한 형태로 영업하는 룸카페나 만화카페 등을 지자체와 경찰이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업소 결정 고시에 따르면 일반음식점 등으로 등록한 '신·변종 룸카페'도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업소에 해당한다. 즉, 자유업·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어 있더라도 △밀폐된 공간·칸막이 등으로 구획하고 △침구 등을 비치하거나 시청기자재를 설치했으며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 등이 이뤄질 우려가 있는 영업장은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다. 또한 해당 업주가 '청소년 출입·고용 제한'을 업장에 표시하지 않았다면 지자체는 경찰과 함께 단속해 시정을 명한 후 시정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전국 지자체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 룸카페를 포함한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업소 전반에 대한 단속을 당부하였다.
여성가족부의 이 같은 행보는 청소년의 성적 실천 자체를 범죄화하고, 사회의 더 많은 공간을 ‘노키즈존(No Kids Zone)화’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나아가,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유해업소 기준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기보다는 ‘신체접촉의 우려’ 등 과거의 낡은 기조를 반복하는 데에 그친다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모순되게도, 여성가족부의 고시 기준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스스로 정한 ‘유해함’의 기준을 어긴 것이 된다. 전라북도의 모 청소년수련관에는 침구가 비치된 만화카페가 있다. 경기도의 모 청소년수련관에는 밀폐에 가까운 노래연습시설이 존재한다. 이 밖에도 청소년유해업소 고시에 명시된 형태와 유사한 청소년 사업을 진행하는 청소년시설은 수두룩하다. 대부분 여성가족부의 관리 하에 있는 시설이다.
청소년유해업소 선정 기준의 모호함은 기존의 규제 완화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21년 1월, 여성가족부는 관광숙박시설 등에서의 청소년고용금지 규제를 완화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난 해소를 위한 것으로, 해당 숙박시설에 현장실습하는 청소년에 한해 고용을 허용한 것이다. 여성가족부만의 사례도 아니다. 20년 11월에는, 교육부에서 학교 보호구역 내 당구장과 만화방의 설치 규제를 완화했다. 당구장, 만화방 업소로부터 규제 완화 건의가 많았던 까닭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 판단되었던’ 업종이, 자영업 규제 혁신/취업난 해소를 위해 ‘유해하지 않은’ 업종이 된 것이다.
특수형 콘돔을 청소년유해물건으로 명시한 쾌락통제법 역시 비슷한 사례다. 여성가족부 고시 제 2013-51호는 특수형 콘돔을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유해물건으로 분류한다. 콘돔은 이미 식약처에서 안전성 심사를 거쳐, 의료기기로 분류된 건강용품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이) 성의 자극적인 감각만 탐닉한다’ 등의 주관적인 사유로 청소년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렸다. 해당 고시로 인해, 청소년은 청소년은 포털 사이트에 ‘콘돔’을 검색할 때 ‘검색어 제한’을 마주해야 하고, 몇몇 사업장에서는 청소년 대상 콘돔 판매 자체를 불허하기도 한다. 정부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을 금지하겠다고 만든 지침이 오히려 피임율을 낮추는 등 청소년이 성적 실천에서 겪게 되는 ‘유해함’을 가중시킨다.
이처럼 여성가족부는 그간 자영업자의 편의 또는 취업난 해소 등 청소년의 삶과 무관한 이유로 자의적으로 ‘유해함’의 선정 기준을 바꿔 왔다. 이번 ‘룸카페’ 규제 지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왜 위험해지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청소년의 성적 행위 자체만을 ‘유해함’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유해한 것은 ‘성적 행위’ 자체가 아니라, 청소년이 성적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위험이다. 사회의 더 많은 공간을 ‘노키즈존’으로 만들고, 청소년을 거리로 내모는 방식으로는 청소년이 성적 실천에서 마주하는 ‘유해함’을 해소할 수 없다. 또한 성적 행위 자체를 ‘유해한 것’으로 규정할 때, 성적 실천을 시도하는 청소년은 ‘유해함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서 배제된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는 청소년만이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해함’의 기준은 정부가 보호하고 싶은 청소년을 선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모든 청소년에게 삶의 안전망을 보장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의 안전을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지금의 행보가 아니라 청소년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제라도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왜 룸카페로, 만화카페로, 때때로는 비상구나 놀이터로 밀려나는지를 물어야 한다. 청소년이 왜 성적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자기만의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의 성적 실천을 금기시하면 청소년을 ‘유해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으리라 믿는 여성가족부의 안일한 대처에 반대한다. 나아가, 청소년이 안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 진짜 ‘유해함’에 단호히 맞서 싸우고자 한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에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2023. 02. 06
어린보라: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
[논평] 유해한 것은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아니다
- 여성가족부의 룸카페 규제 지침에 부쳐-
지난 1일, 여성가족부는 모텔과 유사한 형태로 영업하는 룸카페나 만화카페 등을 지자체와 경찰이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업소 결정 고시에 따르면 일반음식점 등으로 등록한 '신·변종 룸카페'도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업소에 해당한다. 즉, 자유업·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어 있더라도 △밀폐된 공간·칸막이 등으로 구획하고 △침구 등을 비치하거나 시청기자재를 설치했으며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 등이 이뤄질 우려가 있는 영업장은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다. 또한 해당 업주가 '청소년 출입·고용 제한'을 업장에 표시하지 않았다면 지자체는 경찰과 함께 단속해 시정을 명한 후 시정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전국 지자체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내 룸카페를 포함한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업소 전반에 대한 단속을 당부하였다.
여성가족부의 이 같은 행보는 청소년의 성적 실천 자체를 범죄화하고, 사회의 더 많은 공간을 ‘노키즈존(No Kids Zone)화’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나아가, 여성가족부의 청소년유해업소 기준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기보다는 ‘신체접촉의 우려’ 등 과거의 낡은 기조를 반복하는 데에 그친다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모순되게도, 여성가족부의 고시 기준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스스로 정한 ‘유해함’의 기준을 어긴 것이 된다. 전라북도의 모 청소년수련관에는 침구가 비치된 만화카페가 있다. 경기도의 모 청소년수련관에는 밀폐에 가까운 노래연습시설이 존재한다. 이 밖에도 청소년유해업소 고시에 명시된 형태와 유사한 청소년 사업을 진행하는 청소년시설은 수두룩하다. 대부분 여성가족부의 관리 하에 있는 시설이다.
청소년유해업소 선정 기준의 모호함은 기존의 규제 완화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21년 1월, 여성가족부는 관광숙박시설 등에서의 청소년고용금지 규제를 완화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난 해소를 위한 것으로, 해당 숙박시설에 현장실습하는 청소년에 한해 고용을 허용한 것이다. 여성가족부만의 사례도 아니다. 20년 11월에는, 교육부에서 학교 보호구역 내 당구장과 만화방의 설치 규제를 완화했다. 당구장, 만화방 업소로부터 규제 완화 건의가 많았던 까닭이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 판단되었던’ 업종이, 자영업 규제 혁신/취업난 해소를 위해 ‘유해하지 않은’ 업종이 된 것이다.
특수형 콘돔을 청소년유해물건으로 명시한 쾌락통제법 역시 비슷한 사례다. 여성가족부 고시 제 2013-51호는 특수형 콘돔을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유해물건으로 분류한다. 콘돔은 이미 식약처에서 안전성 심사를 거쳐, 의료기기로 분류된 건강용품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이) 성의 자극적인 감각만 탐닉한다’ 등의 주관적인 사유로 청소년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렸다. 해당 고시로 인해, 청소년은 청소년은 포털 사이트에 ‘콘돔’을 검색할 때 ‘검색어 제한’을 마주해야 하고, 몇몇 사업장에서는 청소년 대상 콘돔 판매 자체를 불허하기도 한다. 정부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을 금지하겠다고 만든 지침이 오히려 피임율을 낮추는 등 청소년이 성적 실천에서 겪게 되는 ‘유해함’을 가중시킨다.
이처럼 여성가족부는 그간 자영업자의 편의 또는 취업난 해소 등 청소년의 삶과 무관한 이유로 자의적으로 ‘유해함’의 선정 기준을 바꿔 왔다. 이번 ‘룸카페’ 규제 지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왜 위험해지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청소년의 성적 행위 자체만을 ‘유해함’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유해한 것은 ‘성적 행위’ 자체가 아니라, 청소년이 성적 실천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위험이다. 사회의 더 많은 공간을 ‘노키즈존’으로 만들고, 청소년을 거리로 내모는 방식으로는 청소년이 성적 실천에서 마주하는 ‘유해함’을 해소할 수 없다. 또한 성적 행위 자체를 ‘유해한 것’으로 규정할 때, 성적 실천을 시도하는 청소년은 ‘유해함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서 배제된다.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는 청소년만이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유해함’의 기준은 정부가 보호하고 싶은 청소년을 선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모든 청소년에게 삶의 안전망을 보장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의 안전을 진정으로 고민한다면, 지금의 행보가 아니라 청소년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이제라도 청소년의 성적 실천이 왜 룸카페로, 만화카페로, 때때로는 비상구나 놀이터로 밀려나는지를 물어야 한다. 청소년이 왜 성적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자기만의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청소년의 성적 실천을 금기시하면 청소년을 ‘유해함’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으리라 믿는 여성가족부의 안일한 대처에 반대한다. 나아가, 청소년이 안전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 진짜 ‘유해함’에 단호히 맞서 싸우고자 한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투쟁에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2023. 02. 06
어린보라: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